先驗主義에서 본 『易緯』의 太易元氣論과 取象運數의 원리
- 국립공주대학교 동양학과 석사학위 논문 -
저자 : 유자한
목차
I.서론
1. 연구 목적과 취지
2. 연구 방법과 내용
II.漢代의 經學과 讖緯 및 『易緯』의 형성
1. 漢代의 經學과 讖緯 사상의 경계
2. 『易緯』의 형성과 사회 문화적 영향
III.天地開闢의 인식론과 시공간적 先驗性
1. 동아시아의 天地開闢과 『易緯』의 인식론
2. 시공간적 先驗性의 해석과 이해
IV.太易元氣說과 取象運數의 원리
1. 太易元氣說과 四太論
2. 卦氣論과 取象運數의 원리
V.氣化宇宙論과 先驗主義的 세계관
1. 氣化宇宙論과 象數易學的 사유
2. 先驗主義的 세계관의 지평
VI.결론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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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1.1. 연구 목적과 취지
철학 이전에 존재와 인식의 문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에게 던져진 영원한 숙명적 질문이다. 여기에는 우주의 시작과 운행의 법칙, 천지의 구분과 자연계의 법칙, 인간 삶의 가치와 실현 등에 대한 인간의 끊임없는 탐구와 해석, 그리고 치밀한 이론화의 과정이 연결되어 있다. 인간은 과거의 實在를 기억하기에 미래의 다가옴을 알 수 있고, 天地를 알기에 공간을 이해한다.
마치 서양철학에서 헤겔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칸트와 피히테를 이해해야 함과 같다. 그것은 일종의 사전 지식 또는 사전 경험이 배경이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높은 수준의 과학적 실험을 통해 객관적 증명이 가능한 현대 사회에서도 아직 풀지 못한 많은 질문이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우주의 기원에 관한 질문일 것이다. 그 속에는 삼라만상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진화의 시공간적 운행의 원리도 포함된다. 先秦시대부터 근대 이전까지 동아시아 존재론의 특징 중 하나라면 서양의 創造 신화와 같은 절대자 혹은 완벽한 존재가 등장하지 않으며, 開闢의 개념을 배경으로 하는 인본주의적 사상이 그 출발점이라는 점이다.
본 논문에서 사용하는 창조와 개벽의 명제를 보다 명확히 구분하기 위해서 다음 몇 가지의 필요조건을 부여하려고 한다. 창조 개념에는 결국 초자연적 신, 신앙으로 귀속됨의 문제가 있다는 점, 동아시아에도 창조 개념의 신화가 있으나 전자와 동일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위의 예에서와 같이 창조, 개벽, 신화 등의 용어가 혼재되어 있더라도 신앙의 배경을 걷어낸 관점을 개벽의 범주로 정의하려고 한다. 이것은 몇 가지 중요한 점들을 시사하는데, 첫째는 서양에서와 같이 신(God)에 의한 創造라는 개념이 없다는 것이다. 동아시아에서는 그것을 開闢이라는 개념을 세워 그 속에 본원적인 무엇과 영속적인 시공간성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빅뱅이론에서 말하는 폭발 이전의 한 점에 비유할 수 있는 본체, 본원 혹은 근원의 개념이다. 셋째, 인식론적 관점에서 자연계와 인간과의 관계 설정이다. 인간 주변의 삼라만상을 단순한 無機體 및 현상으로만 인식하는 것이 아니고 같은 경계 안에서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질문을 해 볼 수 있다. “빅뱅이론(The Big Bang Theory)은 과학인가 아니면 철학인가”라는 점이다. 과학적 관점에서 증명할 수 없거나 증명되지 않은 것은 정립된 법칙이 아니며 가설일 뿐인데, 이 빅뱅이론이 그러하다. 그렇다고 그것을 사변철학과 같은 성격이라 하여 사변과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결국 근원의 문제에 있어서 과학과 철학은 서로에 대한 경계가 아닌 한 울타리의 같은 영역에서 의지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우주관과 세계관에 관한 질문은 과학자뿐만 아니라 철학자들에게도 끊임없는 대답을 요구하고 있다고 하겠다.
神話的 신비주의를 걷어낸 후 동아시아 우주관의 출발점은 先秦시기에서 漢代에 이르는 기원 전후의 시기로 볼 수 있다. 이 당시는 諸子百家 등의 치열한 사상적 경쟁과 논쟁 등을 통해 학문 간 교류, 흡수 그리고 계승이 활발히 이루어진 시기로, 이러한 정치, 사회, 문화적 환경을 통해 다양한 관념들이 이론적 체계를 확립해가는 매우 의미 있는 시기라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漢代의 우주관과 세계관은 현재까지도 우리에게 함축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것은 부족한 과학적 지식의 배경 속에서도 우주의 시작과 운행을 탐구하기 위해 인간중심의 능동적 사고를 했다는 점과 이러한 탐구를 관측이나 예측에만 그치지 않고 수많은 저작으로 기록을 했다는 점이며, 더욱 중요한 점은 인간 의식의 차원으로 끌어들여 天文과 인간의 필연적 관계로의 설정까지 확장하였다는 점이다. 여기서 볼 때, 천문 관측이라는 객관적 경험과 사상의 체계화라는 사변적 경험들이 지속적으로 누적되고, 이렇게 누적된 앞선 경험들이 향후 宋代 및 明·淸代까지 일정한 역할을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漢代는 先秦시기 경전들에 관한 연구가 주류를 이루는 經學의 시대로 볼 수 있다. 焚書坑儒 이후 많은 경전이 소실되거나 유실된 연유로 漢代의 경학은 자연스레 두 학파로 나뉘게 된다. 그중 통치 세력과 연관이 깊은 今文經學이 발달하게 되는데, 이는 경학에 讖緯的 요소의 흡수라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결국 참과 위의 경계를 구분 짓는 단계를 거치게 되고, 몇몇 緯書의 지위는 경전의 수준에까지 오르게 된다. 특히 『周易』의 원리를 배경으로 한 『易緯』의 정립된 우주관과 괘기론은 당시의 정치, 사회, 문화적 관점을 잘 드러내고 있으며, 나름의 이론적 체계를 완성하여 동아시아 초기의 우주관을 잘 설명하고 있다. 그 속에는 우주와 자연계 그리고 인간의 관계 정의부터 역사까지 전 과정에 대해 논하고 있으므로 이에 관한 연구는 그들의 깊은 사유와 누적된 경험을 간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며, 위에서 언급한 근원적 질문의 답변에 대한 새로운 방법론과 독특한 시각을 부여받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
역이란 그 덕을 말한다. 만물의 실정에 두루 통했으니 일정한 방법이 없고 신묘함을 감추었으니 그 안이라고 할 게 없다. 밝은 빛이 두루 통하니, 역을 본받아 법도를 세운다. 천지가 밝게 빛나고 일월성신이 배열되며 팔괘가 순서를 정하고 율력이 조화롭게 늘어서며 오행이 궤도를 순하게 따르므로 사계절이 조화롭고 백곡이 결실을 본다. 네 개의 큰 물줄기가 만물의 실정을 두루 관통하니 한가롭고도 깨끗하다. 뿌리를 내리는 초목과 떠돌아다니는 금수는 그 기가 서로 꽉 차 있다. 텅 비어 없는 것이 감응하여 움직이고, 깨끗하고 맑은 것이 명확하게 밝혀준다. 움직이는 사물이 밝게 드러날 수 있는 것은 하늘이 지극히 정성스럽고 매우 면밀하기 때문이다. 번거롭지도 혼란스럽지도 않으며 담박해서 잃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역의 의미이다.
이것은 『易緯』 「乾鑿度」에서 이야기하는 簡易의 해석이다. 즉 마음을 써서 행하는 것이 아니며, 억지로 함 없이 깨끗하고 맑다는 것이며, 자연스럽게 행하는 것으로, 즉 명료하고 쉬움으로 簡易를 풀이하고 있는데, 어쩌면 근원적 질문에 대한 답의 힌트를 이 글 속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1.2. 연구 방법과 내용
『주역』과 달리 『易緯』에 대한 앞선 연구 결과는 많지 않다. 그것은 『易緯』에 대한 사료적 자료가 많지 않다는 것도 그 이유가 되겠지만, 漢代 讖緯 문화 특유의 미신적 성격이나 신비주의적 경향, 天人 관계의 무리한 연계 등이 학술 가치를 낮추게 됨으로써 주류로 자리를 잡지 못하게 된 점도 한 가지 이유가 될 것이다. 물론 현재까지 발표된 소수의 연구 자료들이 존재한다. 다만 그 결과물들은 대체로 성립 시기, 편목들의 해설 등 개론적 성격의 연구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이 논문에서는 『易緯』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틀로써 先驗的 기제의 방법론으로 접근하여 그 속에 담겨있는 그들이 고민하고 사유한 누적된 경험의 思考들과 인간 삶의 운영 방식 등을 조명하려 한다. 또한 현대를 살며 경험한 우리의 사고를 한층 더 얹어, 보다 두터운 선험적 배경을 기초로 세계에 대한 이해와 인간 삶의 자아실현 그리고 인간사회의 가치문제를 더욱 깊이 탐구하기 위한 새로운 시각과 방법을 모색하려고 한다.
인간의 삶은 천지 모형의 유한한 자연계 범위 속에서 삼라만상을 경험하고 체득하는 다차원의 과정이다. 세계의 실재를 직관적으로 체득하는 데에는 선험적 시각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어떠한 초월적인, 선천적인 혹은 비경험적인 요소가 포함되지 않으며 반드시 객관적이고 실질적인 경험을 지칭하는 것으로, 경험을 인식론적으로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의 관념론적 문제가 아닌 실질적이고 직접적인 경험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할 것이다. 즉 선험은 특정의 일이나 상황을 처리하기 전에 그와 관련한 내용을 미리 체험한 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 논문에서는 이러한 방법론적 관점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의 연구를 진행하고자 한다.
첫째, 漢代의 사회 문화적 배경을 근간으로 당시 경학의 특징과 사상을 논하고, 당시 유행한 참위 사상의 근원과 특유의 미신적, 신비주의적 사유가 어떻게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영향을 끼치고 활용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둘째, 서양에서의 창조 개념과 대비되는 동아시아의 天地開闢 사상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천지개벽 사상의 의의가 무엇이며 당시의 우주관과 어떠한 연결점이 있는지, 天文과 인간 삶의 연결 고리를 어떤 사변적 논리로 연결하고 있는지를 탐구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상적 배경 위에 『역위』의 인식론은 어떤 세계관을 담고 표출하였는지 고찰한다.
셋째, 우주는 무엇으로부터 시작되었는지 동아시아 특유의 본체론적 사상과 시공간적 先驗性이 세계관과 인간 삶의 가치 발전에 어떤 연결 고리로 매여있는지 살펴보며, 그러한 세계관이 세상 및 인간사회의 진화 과정에서 어떤 사상적 토대를 제공하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넷째, 『주역』과 道家 그리고 『淮南子』, 『太玄』 등에서 드러나는 元氣의 개념이 『역위』의 太易元氣說에서 이론적으로 체계화되는 과정과 그 속에서 『역위』만의 독특한 사유 방식을 살펴보고, 太易, 太初, 太始, 太素의 단계를 의미하는 四太論에 담긴 시공간성의 근원적 개념과 太極을 본원으로 하는 현상계의 무궁한 시간성과 무한한 공간성을 살펴본다.
다섯째, 한대 역학의 특징 중 하나인 『주역』이 담고 있는 象數의 개념을 바탕으로 『역위』 卦氣論의 도출 과정과 그 속에 나타나는 천문 역법과의 밀접한 관계 그리고 『주역』의 取象運數의 원리를 논하며, 한대의 數論을 다시 한번 들여다본다.
여섯째, 『역위』에서 우주의 생성과 성장 그리고 진화의 논의 과정에서, 어떤 수단으로 그 논리성과 당위성을 부여하며 또한 세계의 모든 개벽 과정에서 본체론적 공식으로 활용하는 ‘1→7→9→1 순환’의 수 개념을 살펴보고, 氣化의 개념을 어떤 방법으로 이론화하는지 파악하여, 한대 및 『역위』에서 드러나고 있는 상수역학적 사유에 관해 논한다.
끝으로, 신화와 미신 그리고 신비주의적 이야기를 제거한 선험적 세계관에서 바라본 한대의 역학 사상과 그 흐름 및 『역위』에 드러난 자유롭고 다양한 자연철학적 사고를 탐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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